부산 센텀시티 신세계 백화점 6층 전시장에서
2014년 9월 29일 월요일
2014년 9월 28일 일요일
말의 중요성 // 불량한 씨앗은 안 심느니만 못하다.
불량한 씨앗은 안 심느니만 못하다.
불량한 씨앗을 심으면 농사를 마친다.
아무리 정성 들여 좋은 열매를맺으려 해도 결국은 헛된 수고가 되고 만다.
말도 좋은 말이 아니면 아예 안하는것인 낫다.
1)푸념, 하소연
살다 보면 고민거리, 난관에 부칮치기도 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고민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입 밖으로는 내지 않는것이 좋다.
어차피 스스로가 풀어야할 일이다. 상대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더더욱 자제해야 한다.
2)은어, 비속어, 욕설
순화되지 않은말, 거친말, 성숙하지 못한 인격을드러내는 말은 삼가해야 한다.
3)험담, 비방
험담은 하는순간은 그 속시원함이 있을지는 몰라도 돌아서면 썩 유쾌하지는 않다.
특히 다른사람에게 가족을 험담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늩 거나 마찬가지다.
가족이라 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도 갖고에게 편견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
4)" 그런데" . "아니 그게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부정하는 말부터 시작하느 습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도 듣는쪽은 무의식적으로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왕이면 "그래",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쳐주자
오늘은 이런 불량한 말보다는
배우자에게는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을 만난 건 축복이에요"
자녀에게는 " 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너희들 덕분에 참으로 행복하단다"
스스로에게는 " 내 앞에는 언제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복받은 사람이다" 라고 말해보세요
이 말이 입밖으로 나가는 순간 , 쑥쑥자라서 언젠가 현실이 될것입니다.
아무리 정성 들여 좋은 열매를맺으려 해도 결국은 헛된 수고가 되고 만다.
말도 좋은 말이 아니면 아예 안하는것인 낫다.
1)푸념, 하소연
살다 보면 고민거리, 난관에 부칮치기도 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고민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입 밖으로는 내지 않는것이 좋다.
어차피 스스로가 풀어야할 일이다. 상대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더더욱 자제해야 한다.
2)은어, 비속어, 욕설
순화되지 않은말, 거친말, 성숙하지 못한 인격을드러내는 말은 삼가해야 한다.
험담은 하는순간은 그 속시원함이 있을지는 몰라도 돌아서면 썩 유쾌하지는 않다.
특히 다른사람에게 가족을 험담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늩 거나 마찬가지다.
가족이라 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도 갖고에게 편견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부정하는 말부터 시작하느 습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도 듣는쪽은 무의식적으로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왕이면 "그래",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쳐주자
오늘은 이런 불량한 말보다는
배우자에게는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을 만난 건 축복이에요"
자녀에게는 " 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너희들 덕분에 참으로 행복하단다"
스스로에게는 " 내 앞에는 언제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복받은 사람이다" 라고 말해보세요
이 말이 입밖으로 나가는 순간 , 쑥쑥자라서 언젠가 현실이 될것입니다.
2014년 9월 25일 목요일
누가 지옥을 갈까? //하나님의 교회
성령시대 구원자로 임하신 아버지 안상홍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될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다면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는 어떤가요? 예수님이 아닌 안상홍 씨를 믿고 있으니 지옥 초대는 따놓은 당상 아닙니까?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9:43~49)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고통을 당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상 누군가는 분명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은 과연 누가 갈까요?
성경에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1~12)
그런데 같은 성경 안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0~11)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나의 전에도 나의 후에도 나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천하에 구원을 얻을 이름은 오직 예수’라고 하시니 어떻게 한 성경 안에 이렇게 모순되는 기록이 공존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정하였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바울을 비롯한 신약시대 사도들 모두가 성부시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또 여호와 하나님을 올곧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방식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임하시기 전에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등장 이후부터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을 달리하신 이유는 사단의 세력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려야 할 영광을 탈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구원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담으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6천 년의 기나긴 구속의 기간을 설정하셨습니다. 그리고 6천 년 구속의 역사를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시대로 구분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통하여 구원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 시대마다 이름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부시대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성자시대에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러한 구원의 섭리를 깨달았던 마태 역시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이 있다는 내용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마태복음 28장의 내용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부시대의 아버지인 ‘여호와’, 성자시대의 아들인 ‘예수’의 이름이 있듯이 성령시대에 등장하시는 구원자의 ‘이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모두가 성령시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본다면 시대별로 ‘여호와’와 ‘예수’의 이름을 주셨듯이 이 성령시대에도 성령의 ‘이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예수’의 이름을 배척하였던 유대인들의 오류가 현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3~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힘써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 곁에 두고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결국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상황이 꼭 그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을 핍박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던 것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설마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사람처럼 이렇게 오시겠는가!’
‘저렇게 빈약하고 볼품없는 자가 어찌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복음 활동을 하시며 성경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보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였더라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고 침을 뱉었으며 채찍을 내리치고 희롱하고 조롱하며 결국 십자가에 못박는 끔찍한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임하셨지만 그들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지금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하지 못한 채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진출처[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https://pasteve.com/files/2013/06/27/bf8b959fc6fab0cdc889eed47f78c4be175341.jpg)
사진출처[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성령시대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새 이름’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6~17)
요한계시록 2장에 기록된 흰 돌은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2:4).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에서 말씀하신 ‘나’라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때가 되면 예수님의 ‘새 이름’을 가진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시대와 같이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을 ‘받는 자’가 있고 ‘받지 못할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시대를 사는 오늘, 예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더라도 ‘예수’라는 이름은 상식과도 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시대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성령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16, 3:12, 마태복음 28:18~20).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이사야 52:6). 그렇다면 성경이 알려주는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임하시는 예수님의 ‘새 이름’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오실 때는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두고 영으로 임하시는 예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영으로 임하시는 예수님을 ‘한 번’, ‘두 번’이라는 수로써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무지한 주장과 생각보다는 성경을 통해서 중심을 삼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임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 예수님에게 ‘세상 끝에 오시는 주의 임하심’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마태복음 24:3). 그 답으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26~27)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23~25)
세상 끝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은 먼저 많은 고난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하신다면 고난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권능의 하나님을 능욕하여 고난을 당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초림 때와 같이 재림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를 가지고 임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신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두 번째 등장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히브리서 9:28).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자면 두 번째 등장하지 않으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임하시게 되는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을 주실까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인 유월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요한복음 6:53)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19, 26~28)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살로 표상된 떡을 먹고 예수님의 피로 표상된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생명을 얻는 절기는 오직 유월절뿐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진출처[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https://pasteve.com/files/2013/07/02/668ddb647832ed2d52a092efc26160b0114248.jpg)
사진출처[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하지만 유월절은 사단 마귀의 계략에 의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거쳐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유월절이 없어졌다면 그 누가 죄 사함과 영생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렸던 유월절을 다시 찾고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두 번째 등장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히브리서 9:28).
현 시대, 지구촌 모든 교회 중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모든 절기를 회복하시어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안상홍님이 바로 성령시대 새 이름으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가 아니시겠습니까?
지옥으로의 초대, 과연 누가 당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배운 지식은 오직 ‘여호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들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성자시대의 지식을 배운 사람들은 오직 구원자의 이름이 ‘예수’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령시대를 살면서도 성령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에서 멈춰버린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20). 만약 이들이 유대인들과 똑같은 오류를 범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의 결과 역시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아닐까요?
사람의 신체가 절단되는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 인생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바로 불로 당하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 끔직한 불의 고통을 죄로 인해 영원토록 당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이런 지옥으로의 초대를 그 누가 달갑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 그것이 성부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마지막 성령시대에는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오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소망이십니다.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일까?
주고 또 주고도 더 주지 못하시는 것이 한이라는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머니, 이제는 우리의 안위가 아닌 당신의 안위를 살피시길,,, 그리고 힘내시길,,,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엘로힘 하나님 안에서 천사되기^^
오늘도 난 소망합니다.
영원한 나의 집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기를...
오늘도 난 소망합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 닮은 모습으로 변화입기를...
오늘도 난 소망합니다.
형제 자매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영원한 나의 집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기를...
오늘도 난 소망합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 닮은 모습으로 변화입기를...
오늘도 난 소망합니다.
형제 자매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엘로힘하나님 안에서..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아버지 어머니를 닮은 하나님의교회 천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엘로힘하나님 안에서..어떤 시험도 이겨내고.. 하늘 본향에서 부모님을 뵙는 하나님의교회 천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엘로힘하나님안에서.. 사랑으로 연합하여 아버지 어머니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칭찬 받을 수있는 하나님의교회
천사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비처럼.. 저 하늘 본향으로 힘껏..날개짓 하며 날아 가길.. 소망 합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천사님들 ..홧팅 ]

나비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 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과는 다르단다."
-꽃들에게 희망을' 중 -
나무에 거꾸러 매달려 고치를 만들고 있는
늙은 애벌레와, 주인공인 노랑 애벌레와의 대화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믿음으로 감동을// 성경역사 한장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누가복음 5장 17~20절
유대와 예루살렘, 갈릴리 곳곳에서 소문을 듣고 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을 때다.
어떤 사람들이 중품병자가 누운 침상을 메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나 무리에 막혀 들어갈 방도를 얻지 못한다.
집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낸 다음 병자를 침상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운다.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방법이 없다고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예수님만 만나면 환자의 병이 나을 거이라는 믿음 하나로 지붕에 올라가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가 아니라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능력을 베푸셨다. 지붕을 뜯어낼 만큼 간절하게 환자의 치유를 바라는 마음에 감동하신 것이다.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 그것의 이름은 '사랑'이다.
사랑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기적을 일으키는 가장 큰 힘이다.
봉평메밀꽃필무렵//가족여행
메밀꽃이 한창이다.
작고 하얀 꽃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너무 이뻐 보였다.
덕분에 아이들과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메밀꽃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조그 아쉽긴 했지만...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아버지의 발자국
아버지의 발자국
높고 푸른 하늘
광활한 우주 속
무한한 공간 펼치시어
날개 잃은 자녀에게
하늘 소망 갖게 하시고
산봉우리마다
알록달록 고운 수놓아
잃어버린 창조의 능력
기억하게 해주시네
망각의 강을 건넌
범죄한 천사들
그 옛날 천상의 기억
혹여나 찾으려나
간절하신 마음으로
만물 속에 남겨두신
아버지의 발자국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대관령 양떼 목장 탐방기//가족여행
대관령 양떼 목장 을 다녀왔어요~
지난번에 갔을때는 비가 와서 제대로 보지 못해서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양떼 목장을 찾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ㅠㅠ
지난번에 갔을때는 비가 와서 제대로 보지 못해서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양떼 목장을 찾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ㅠㅠ
2014년 9월 4일 목요일
가족이 싫어하는 습관, Good bye!
가족이 싫어하는 습관은 이제그만~^^*
"여보, 양말은 세탁 바구니에 넣어 달라고 했죠!" "엄마, 제 물건을 마음대로 버리시면 어떡해요?" "안 쓰는 방은 스위치를 좀 끄고 다닐 수 없겠니?"
가족의 작고 사소한 습관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고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머리로는 고쳐야지 하면서도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나와버리는 게 습관입니다.
문제는,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습관이 함께 생활하는 가족에게는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가족이 싫어하는 습관이라면 애쓰고 노력해서 고치는 것이 가정의 화목을 위한 길이 아닐까요?
이제 부터는 가족이 싫어하는 습관은 이제 그만~^^*
상대방에게 습관을 고치라고 무조건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내가 버려야 할 습관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가족에게 원하는 부분을 서로 이야기 해봅시다. 습관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 없겠죠?
2014년 9월 1일 월요일
부산 장안읍 수해복구현장 // 하나님의 교회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다
부산 장안읍에 수해복구 현장 소식입니다.
아직까지 손볼곳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어요
많은 봉사자들의 손길이 모여서 하나,둘 정리가 되어져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손볼곳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모든 수재민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 봉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손볼곳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어요
많은 봉사자들의 손길이 모여서 하나,둘 정리가 되어져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손볼곳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모든 수재민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 봉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이야기 합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만큼 알뜰 살뜰 자신의 집 일처럼 신경써서 도와주는 곳은 드문것 같다고...
하늘 어머니의 선한 가르침에 따라 봉사를 생활화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입가에 늘 미소를 머금고 수해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떻게 하면 더 도와드릴까 애쓰고 있다.
이런 모습이 세상사람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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